'더기버스50' 2차 10명 선정
기부문화 확산 캠페인 '파이위크' 일환
더버터 최지은, 문일요기자 2025.6.16.11:45
‘한국의 기부자들: The Givers 50’(이하 더기버스50) 2차 명단이 오늘(12일) 공개됐다. 권오준·김도훈·김민서·김용성·김윤정·김지훈·남도형·오성삼·최병기·최성환 등 10명이다.
‘더기버스50’은 유명인사나 초고액기부자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 있는 기부를 실천해 온 우리 주변 위대한 기부자들을 조명하는 프로젝트다. 더버터와 비영리단체들이 함께하는 민간 주도 기부문화 확산 캠페인 ‘파이위크(Pie Week)’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더기버스50' 2차 발표에 선정된 기부자 10인.
매년 50인의 기부자가 ‘더기버스50’에 등재된다. 파이위크 참여 단체들이 후보자를 추천하고, 최종 50인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금까지 공개한 기부자는 20인이다. 남은 30인은 파이위크 캠페인 홈페이지와 중앙일보 공익섹션 더버터 지면을 통해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기부자 선정 시에는 ▶︎지속성 ▶︎태도 ▶︎스토리 ▶︎영향력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단발성 기부보다는 꾸준한 기부를 중요하게 보며, 기부 금액은 많지 않아도 된다. 기부에 대한 태도와 철학 등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기부자가 가진 고유의 스토리, 주변에 미친 영향력 등도 주요 평가 기준이다. 그 외 연령·성별·직업·기부 분야 등에 대한 다양성도 고려한다.
한편, 올해 진행되는 ‘2025 파이위크’에는 총 23개 비영리단체가 참여한다. 국제구조위원회, 굿네이버스, 굿피플, 기아대책, 대한사회복지회, 밀알복지재단, 바보의나눔,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사랑의달팽이, 세이브더칠드런, 열매나눔재단, 월드비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유엔난민기구, 초록우산, 컨선월드와이드, 케이와이케이파운데이션, 플랜인터내셔널코리아, 한국컴패션, 한국해비타트, 함께일하는재단, 함께하는사랑밭, 홀트아동복지회(이상 단체명 가나다순) 등이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파이위크 캠페인에 동참한다.
01 배구를 사랑한 소년, 이제 유소년 꿈을 응원하다 | 권오준 기부자
올초 KYK재단에 5000만원을 기부한 권오준 선시안 대표는 프로배구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십시일반 작은 돈을 모아 배구공을 사고 체육관 없이도 야외에서 배구를 즐겼다.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도 사람은 참 열심히 할 수 있구나, 그런 걸 배웠죠."
일찍이 컴퓨터를 다루는데 흥미를 느낀 권씨는 대학 재학 중에 게임개발사를 설립했다. 7년 전 고등학생 시절에 개발한 배구 게임은 현재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1억1000만 명을 달성했고, 올해 매출은 100억원으로 예상된다. 배구 팬들의 열렬한 반응 속에 성장한 게임은 그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뭘까."
답은 기부였다. 배구 유소년을 지원하는 KYK재단의 활동이 눈에 들어왔다. 한부모가정에서 자라며 주변의 도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기부금을 어떻게 써달라고 하진 않았어요. 재단이 더 잘 알 테니까요. 어린 시절의 저처럼 간절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환경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02 잊혀가는 위기 현장을 기억하는 법 | 김도훈 기부자
“전쟁이나 지진이 발생하면 처음에는 전 세계에서 관심과 지원금이 쏟아집니다. 그러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멀어지죠. 여전히 현장에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남아있는데 말입니다. 잊혀 가는 위기 현장에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구에서 산업용 펌프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도훈 기부자는 올해로 14년째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전 세계 위기 현장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수단과 미얀마의 난민들을 위해 기부를 했다. 두 나라는 수년째 내전과 자연재해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위기가 일상이 되면서 어느새 세상의 관심도 줄어든 곳이다.
김 기부자가 난민과 이주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회사가 위치한 공단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부터다. 타지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향과 가족에 관심이 갔다. 기부를 시작한 후 코로나 팬데믹과 경제 침체로 회사 운영이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다. 그럴수록 더 힘든 사람들이 떠올라 기부를 멈출 수 없었다. 2015년부터는 매년 1000만원 이상의 정기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김 기부자는 “기부를 시작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시작하면 자꾸만 더 하게 된다”면서 “모든 분이 작게라도 꼭 한번 기부를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03 기초생활수급비 쪼개 아이들 돕습니다 | 김민서 기부자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내 어린 시절이 겹쳐졌어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나의 모습과 탯줄처럼 연결되는 거 같았죠."
김민서씨에게 기부는 삶을 이어가는 동력 중 하나다. 가난한 유년 시절,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했다.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쳤고, 어렵사리 대학 문턱도 넘었다.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을 버티며 아끼고 아끼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컨선월드와이드에 정기후원은 유지했다. 일평생을 생계에 쫓기다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후원을 중단했다. 그러다 2019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면서 후원을 재개했다. 후원 중단 1년만이었다. 수급비는 월 65만원으로 넉넉지 않지만 1만원을 기꺼이 내놓았다. "어렸을 때 컨선 같은 지원단체를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마음으로 기부합니다."
현재 김씨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몸의 근육이 빠져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가 있다. "누군가를 크게 도와주기 위해서 한 거라기보다 나만의 약속 같은 거예요. 아주 작지만, 아이들을 살리는 데 제 손이 닿아 있다면, 그걸로 됐죠. 마지막까지 계속하고 싶어요."
04 제품 팔리는 만큼 기부합니다 | 김용성 기부자
건강기능식품 회사를 운영하는 김용성 기부자는 첫 제품을 출시하기 전 기부 계획부터 세웠다. 생산한 제품의 10%는 무조건 기부를 하기로 했다. 보통은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지만 김 기부자는 처음부터 기부 물량을 함께 만든다. 함께하는사랑밭 정기 후원도 병행하며 앞으로 나올 신제품 나눔까지 계획하고 있다.
“처음부터 기부를 사업 구조 안에 포함했어요. 기부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회사의 지속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했어요. 기부는 여유가 생기면 하는 게 아니라 항상 습관처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나누지 못하면, 나중에도 나눌 수 없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는 이런 다짐을 가족과 친구, 직원 등 주변 사람들에게 미리 알렸다.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자기 다짐이었다. 김 기부자는 “이렇게 이곳저곳 말해두면 기부를 유지하면서 기부자가 되거나, 말한 것을 지키지 않는 사기꾼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며 웃었다.
김 기부자의 꿈은 회사를 더 성장시켜 재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사회에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조용히, 오래 기부해 나가려고 합니다.”
05 성공한 기업인들과 13년째 고액기부 | 김윤정 기부자
“사회적 성공은 혼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운과 주변의 도움이 함께한 덕분이죠. 그래서 저와 같은 기업가분들께 우리가 얻은 것을 다시 사회와 나누자고 권합니다.”
지난 22년 동안 글로벌 물류기업 씨스테인웨그로지스틱코리아를 이끈 김윤정 대표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직책이 있다. 2013년부터 맡고 있는 홀트아동복지회 고액후원자 모임 ‘탑리더스’ 회장직이다. 경영 일선에서 바쁜 와중에도 김 대표는 탑리더스 회원들과 함께 아동, 미혼모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매년 여름에는 아이들을 위한 멘토링 캠프에 참여해 자원봉사를 한다. 지금까지 김 대표의 진심 어린 활동을 지켜본 10명 이상의 기업인이 탑리더스 활동에 동참했다.
김 대표에게도 인생의 굴곡이 있었다. 유방암 수술, 가족의 사업 고비 등 쉽지 않은 시기를 겪었다. 그럴수록 정신을 더욱 바짝 차리고 달렸더니 어느새 위기는 지나가고 회사는 매출 148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돌이켜보니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주변에서 받은 사랑 덕분이었다. 김 대표는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언젠가 반드시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06 우리 가게 메뉴판엔 ‘기부’가 있어요 | 김지훈 기부자
“고기 먹고 기부도 하세요.”
대전 대덕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지훈 기부자의 가게에는 늘 ‘후원 신청서’가 준비돼 있다. 손님들이 이 신청서를 작성해 밀알복지재단에 월 1만원 이상 정기후원을 시작할 경우엔 특별한 혜택을 준다. 매달 고깃집에서 쓸 수 있는 5000원 쿠폰을 발송한다. 가게 오픈 전부터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 온 그는 지인들에게도 늘 기부를 권한다. 지금까지 그를 통해 정기후원에 참여한 기부자는 65명에 달한다.
김 기부자는 사회복지사 출신이다. 지역 복지관에서 일한 9년 중 5년 동안 후원 업무를 맡았다. 가게 운영은 그의 또 다른 나눔 방식이 됐다. 한 달에 두 번은 지역 복지시설을 찾아 어르신의 식사를 위해 고기를 기부한다.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게는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김 기부자는 "기부가 활성화될수록 어려운 사람들의 일상이 나아질 수 있다"면서 "나와 우리 가게로 인해 단 한 명이라도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7 아프리카에 스무 명의 아이를 둔 성우 | 남도형 기부자
13년 전, 막 신인 티를 벗은 시절이었다. 남도형 성우는 아프리카에 학교를 짓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내래이션 녹음을 마친 후 자꾸만 그곳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굿네이버스를 통해 차드에 사는 한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매월 3만원을 보냈다.
기념할만한 일이 있을 때마다 후원 아동을 한 명씩 늘려갔다. 이제까지 연결된 아동은 총 20명. 이 중 6명은 스무 살이 넘어 자립했고, 지금은 14명을 지원하고 있다. 다섯 살 꼬마였던 첫 후원 아동 도우모움 안토이네는 올해 벌써 18살이 됐다.
방 한편에는 그동안 아이들이 보낸 편지가 모두 보관돼있다. “처음 받은 편지가 아직도 생각나요. ‘저는 후원자님 덕분에 행복해요. 후원자님도 이 편지를 받고 더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적혀 있었어요. 저도 당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던 터라 편지를 읽자마자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나눔을 하면 제가 오히려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알게됐어요.”
매년 1월 1일에는 특별한 선물금을 보낸다. 아이들은 우리 돈 10만원으로 염소 한 마리와 옷, 빵, 우유 등 가족의 한 달치 생필품을 샀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남 성우는 그런 아이들을 떠올리면 이제는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전 외동이라서 가족은 평생 부모님밖에 없었거든요. 이제는 스무 명의 아이들이 항상 제 옆에 있는 것 같아요.”
08 세 번의 도움, 일생의 기부로 갚습니다 | 오성삼 기부자
"형편이 되면 하겠다고요? 그 마음으로는 평생 못합니다."
오성삼 전 건국대 교수는 "기부는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힘든 누군가를 볼 수 있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오며 세 번의 결정적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첫 번째는 아버지를 여읜 초등학생 시절 보육원에서 미국의 월드비전 후원자와 연결되면서였다. 두 번째는 스무 살 대학 입학금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월드비전이 학비를 내줬다. 마지막은 미국 유학 시절 마지막 학기 등록금이 없어 미국월드비전 본부에 편지를 썼더니 등기우편으로 수표가 도착해 무사한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그때 약속했다. 이자를 몇배 쳐서 갚겠다고. 한국에 돌아와 교수가 된 그는 틈틈이 돈을 모았다. "7배로 갚았습니다. 월드비전 미국 본부에 2000달러, 한국에 5000달러를 보내 학생들 지원에 써달라고 했죠."
월드비전 정기후원은 IMF 이후 시작했다. 월급이 오를 때마다 한 명씩 늘렸다. 가장 많을 땐 월 60명을 후원했다. 정년퇴직 후에도 인천 송도고 교장직을 맡게 되면서 후원을 이어갔다. "기부는 끊는 게 아니에요. 그냥 삶 속에서 계속되는 거죠. 마음대로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더라고요."
09 유치원생 2000명과 함께 해 온 ‘나눔 수업’ | 최병기 기부자
최병기 기부자
신촌몬테소리유치원 최병기 원장은 매달 아이들에게 4장의 ‘미션 쿠폰’을 준다. 아이들이 방 정리하기, 엄마 안마해주기 같은 일상 속 작은 미션을 하나씩 완수할 때마다 부모님은 500원을 준다. 그렇게 모은 돈은 매달 한국컴패션을 통해 각 반에 일대일로 결연된 해외 아동에게 전달된다.
지난 17년 동안 2000명 넘는 아이들이 이 교육을 통해 나눔과 감사의 가치를 배웠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도움을 받던 나라였잖아요.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고요.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세상엔 밥 한 끼, 연필 한 자루가 간절한 친구들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했어요.”
결연 아동에게 편지가 오기도 한다. 아이들도 그림을 그려서 답장을 보낸다. 연말에는 시장놀이를 연다. 1년 동안 모은 쿠폰을 쓰면서 열심히 벌고 나눈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시간이다. “졸업할 때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봐요. 그럼 아이들은 어떤 직업을 갖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요. 이런 작은 마음이 언젠가 큰 열매를 맺지 않을까요."
10 내가 받은 장학금, 다음 세대에 돌려줍니다 | 최성환 기부자
한 달에 7만원으로 잠자리를 해결하고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 경기도 파주시 농촌 마을에서 서울로 유학 온 최성환 기부자는 도에서 운영하는 장학관(학숙) 장학생으로 선발돼 대학 시절을 보냈다. 덕분에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 시절 장학금은 단순한 생활비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응원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IMF로 경기가 어려운 와중에도 삼성에 취업했다. 이후 2009년에는 컨설팅 회사를 창업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아대책에 재산의 일부를 유산기부 형식으로 전달했다. 대학 시절 머물던 경기장학관과 경기도민회에는 매년 장학금을 전달한다. “기부는 좋은 바이러스를 퍼뜨립니다. 나눌수록 제 삶도 단단하고 건강해지는 걸 느껴요. 제가 도운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면 그게 정말 좋은 사회가 아닐까요.”
출처 더버터 https://www.thebutter.org/news/articleView.html?idxno=1376